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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왼쪽 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트 선재' 입니다. 아트 선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신다고요? 오른쪽 골목길을 올라가면 삼청동이 나오고 보이는 길을 따라 쭉 나아가면 국군병원을 지나 경복궁과 만나게 됩니다.

아직도 모르시겠다고요? 바로 종로구 소격동 정독 도서관 앞 거리입니다. 입사 공부를 위해서 제가 한 때 매일 왕래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인사동이나 삼청동과 아주 가까운 곳인데 이 거리를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 동네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탓인지.

하긴 인사동처럼 골동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널린 것도 아니고 삼청동처럼 옷집이나 잡화를 파는 상점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거리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이 거리가 맘에 듭니다. 번잡함도 없고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해 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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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나면 대로변을 제외하고는 조용한 옛 동네의 모습이 마치 70년대로 시간을 거슬러 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작은 창 사이로 형광등 불 빛 새어 나오는 기와집 돌담을 따라 굽이굽이 꺾어지는 골목길을 들어가 보면 경찰에 쫓기는 운동권 학생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때론 직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산업 역군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가로등 불빛 마저 희미한 그늘 밑을 지날 때면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죠. 이런 풍경이 서울 시내 한 가운데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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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이라고 개발의 바람이 벼켜갈리만은 없죠. 돌담길 지나 큰길로 나오면 고급 레스토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 떨어져 가는 정말이지 이건 '서울 1945'에나 나올 법한, 무얼 파는지 알 수 없는 간판을 단 상회 건너편에 돈 없어 보이는 사람은 문전박대 할 것 만 큼 위압적인 타이 레스토랑이 버티고 있는 풍경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네요. 식당 앞에 죽 늘어서 있는 최고급 승용차들이 앞 건물을 향해 콧방귀라도 끼면 간판이 툭~ 하고 떨어져 내릴 것만 같습니다.



이곳은 여느 번잡한 거리 만큼 가로등이 많지 않습니다. 밤 다운 어둠이 깔려 있고 그래서 더욱 불켜진 커피숍에 눈길이 갑니다. 유리벽 너머 밝은 조명아래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고개를 살짝 젖히며 유쾌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납니다. '분명 저 순간만큼은 행복하리라.' 인생이 괴로운 것이라는 의심을 할 틈 따위 없어 보입니다.



도서관을 끼고 좁은 골목...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 자리잡은 소박한 커피전문점 하나. 깊어 가는 여름 밤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행복이란 걸 느낄 수가 있죠. 아니 어쩌면 누군가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더 큰 고독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홀로 라고 느껴질 때. 저 고양이라도 말을 걸어주면 좋을 텐데. 그런 상상을 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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